1. 해를 쏘는 자
인간.
오직 인간.
다른 무엇보다 인간을 지향하는 것.
이것이 옛날부터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사관이다. 그 때문에 중국의 역사에는 신화가 많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신화가 결코 적은 게 아니다. 단지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신화를 적어 넣고 싶어 하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유학이 중국의 사상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괴력난신(怪力亂神) 따위는 입에 담지도 말라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이었다.
중국에도 신화는 풍부했다. 그리고 대체로 몹시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다. 신화를 하나 골라서 독자들께 소개해 드리고 싶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국적인 것으로.
<십팔사략>이라는 책은 정사(正史)를 간추려 편찬한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가 많이 수록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태고(太古), 삼황(三皇), 오제(五帝)에 대한 얘기도 적혀 있고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존재나 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존재에 관한 기록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름만 언급해 두는 것으로 족하다.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씌여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 십팔사략>의 초두에 <십팔사략>에 실려 있는 신화나 전설을 소개하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사이에 비웃음 소리도 적지 않게 섞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예(羿)의 이야기를 해 보자.
예는 요(堯) 시대의 신이다. 아니, 신이라고 단정하는 건 옳지 않다. 신이라고 전해진다라는 말이 맞겠다. 하(夏) 왕조시대에도 또다른 예가 있었다고 하는데, 태강(太康) 임금을 축출한 이야기가 사마천의 <사기>에 실려 있다. 요의 예와 하의 예가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 여기서 따질 필요는 없다. 요든 하든 전설로만 전해지는 시대일 뿐이다. 그런데 어느 시대의 예이든 궁술의 명인이었고 대단히 용맹스러웠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한다.
천상에 살던 예가 지상으로 파견된 것은 천제(天帝)의 자식들 때문이었다. 천제에게는 아들 열 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해[太陽]였다. 그들의 어머니 희화(羲和)는 매일같이 아들 한 명을 머리 여섯 달린 용이 끄는 수레에 태워 차례로 달리게 했다. 순서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열 개의 해는 열흘에 한 번씩만 하늘에 오를 수 있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해는 늘 하나였지만 사실은 열 개가 교대로 떠오르는 거였다.
몇 천 년, 몇 만 년이 흐르는 동안 해들은 슬슬 싫증이 났다. 형제들은 부상(扶桑)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한 번쯤은 다 같이 놀러나가도 되지 않을까? 어머니가 아시면 시끄러워질 테니 몰래 나가자.”
이리하여 한꺼번에 열 개의 해가 하늘에 뜨는 일이 벌어졌다. 형제들은 손에 손을 잡고 즐겁게 나들이를 즐겼지만 인간 세상은 난리가 났다. 해가 열 개나 떴으니 무더위를 넘어 모든 게 타들어갔고 농작물도 모조리 고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백성들이 고난에 빠지자 지상의 성군(聖君) 요(堯)가 천제에게 구원을 청했다. 당시 백성들을 괴롭힌 것은 열 개의 해만이 아니었다. 맹수와 요괴, 해조(害鳥) 등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지상의 성군이 구원을 청하니 천상의 주인도 이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맹수나 해조를 해치우는 데는 활의 명수가 가장 적합했다. 천상의 모든 신 가운데 활을 잘 쏘기로는 예와 겨룰 만한 이가 없었다.
예가 뽑힌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예는 명궁임에 분명했으나 인정(신정(神情)이라는 말이 맞겠지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으로 평판이 높았다. 하지만 천제에게 있어서는 열 개의 해 모두가 귀한 아들이었다. 아무리 예라고 해도 그런 아들들을 가차없이 죽일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강한 화살을 정확하게 날려 열 개의 해를 다시 부상나무 아래로 돌아가게 해 줄 것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백성들을 위해 임무에 충실하라는 엄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예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길을 나섰다.
예는 지상으로 내려갈 때 아내를 동반했다. 천상의 신들이 출장을 갈 때는 부부동반이 원칙이었다고 한다. 예의 아내는 상아(孀娥)라는 여자였다.
예는 지상에 도착하자 하늘에 나란히 떠있는 열 개의 해를 쏘아 떨어뜨리는 일에 착수했다. 실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화살은 열 개로 충분했다. 그는 화살통에 화살 열 개를 준비하고 차례대로 해를 향해 시위를 당기기 시작헸다.
그러자 요 임금은 걱정이 생겼다. 해가 열 개나 뜨는 것도 곤란한 일이었지만 다 사라져 버리면 이 세상은 암흑 속에 묻히고 말 것이었다. 농작물도 자라지 않고 무엇보다 인간이 생존할 수 없게 될 거였다. 요는 인간에게 명을 내려 예의 화살통에서 화살 하나를 훔치게 했다. 일발필중. 화살 아홉이 해 아홉을 떨어뜨리고 한 개만 하늘에 남게 되었다.
예는 다음으로 인간을 잡아먹는 괴수나 괴조, 그리고 낚시배를 뒤집어엎어대는 큰 바다뱀 등을 차례로 물리쳤다. 나무랄 데 없는 솜씨였다.
하지만 천제는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한 아들 아홉을 한꺼번에 잃는 바람에 미친 듯이 화가 났다.
“예, 이 놈! 그 놈의 신적(神籍)을 당장 박탈하라!”
천제는 좌우에 명을 내렸다.
신의 세계에도 호적이 있었다. 거기서 말소 당하게 된 예 부부는 이제 천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신은 불사의 특권을 누렸지만 신적에서 지워진 예 부부는 인간의 운명인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천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단념할 수 있었지만 죽어서 지옥에 내던져지는 일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당신은 바보예요. 자만에 빠져서는 아무 생각 없이 해를 아홉 개나 떨어뜨리는 짓을 했으니 말이에요. 이제 어떡해요!”
상아는 히스테리를 부렸다.
“그렇게 투덜거리지 마. 어떻게든 해 볼테니.”
인간 세상의 남편들과 마찬가지로 신이었던 예도 아내의 히스테리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죽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헤쳐나가고 싶었지만 이제 신이 아닌 이상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예는 슬쩍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 있었다. 아마도 아내가 바가지를 긁어대는 통에 울적해져서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건지도 몰랐다.
상대는 인간이었다. 난봉꾼으로 소문난 하백(河伯)의 아내 낙빈(洛嬪)이었는데 그녀는 절세미인이었다. 낙빈 역시 그 즈음 남편의 여색증에 질려 삶의 즐거움이라곤 하나도 없던 차에 예라는 어엿한 남자가 눈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 ‘바람난 이야기’의 1막은 예가 하백의 눈을 활로 쏘아 맞추고 하백이 천제에게 달려가 읍소하는 등 작은 소동으로 이루어지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예는 결국 아내 상아에게 돌아왔다.
이렇게 말하면 이 신화의 내용이 남자가 분란의 주범이라는 얘기 같지만, 사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여자는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이러면 여자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분명 눈썹을 추켜세우고 남자야말로 배신의 정형이라고 주장할 게 틀림없다.
남자가 여자를,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하지만 너무나 깊이 외곬으로 생각하게 되면 집착이 되고, 상대방에 대한 기대만 너무 커져 버린다. 현실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마치 배신당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식의 이야기가 아닐까. 상대방에게 배신 당한 느낌은 남자 쪽이 클 수도 있는데, 남자는 로맨틱한 반면 여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타케토리 이야기(竹取物語 ; 일명 <카구야 공주 이야기> - 역자 주) 속의 카구야 공주가 청혼하는 남자들을 모조리 뿌리친 건 아주 잘 한 일이긴 해도, 20년 이상 양육해 준 타케토리 영감마저 뿌리치고 승천해 버린 건 비정한 짓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감이라고 했지만 나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이야기에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은 여자에게 배신 당한 남자의 모습이니까.
다시 예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밤낮 없이 부부싸움으로 지새고 있던 예는 귀가 쫑긋해지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곤륜산(崑崙山)에 서왕모(西王母)라는 신이 살고 있는데 불사의 약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몹시 험하고 깊은 물과 화산이 많아 보통 인간들은 찾아갈 수도 없었다.
“좋았어. 아주 좋은 소식이군. 곧 출발해야겠다.”
예는 곤륜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신계에서 인간계로 강등되기는 했지만 예는 평범한 인간들과는 질이 달랐다. 곤륜산까지 가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서왕모는 분명 불사의 약을 가지고 있었지만 남아 있는 건 겨우 두 알뿐이었다.
“이제 더는 없으니 명심하시오. 길일을 택해 부부가 함께 한 알씩 드시오. 그러면 불로불사의 몸이 됩니다... 두 알을 먹으면 승천하여 다시 신이 될 수 있으나...”
서왕모가 설명을 해 주었다. 모(母)라는 글자가 붙어서 여신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남신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예는 뛸 듯이 기뻐하며 아내에게 돌아와 서왕모가 해 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불로불사만 해도 얼마나 좋은가. 지상도 결코 나쁘지는 않아. 천상으로 돌아갈 이유도 딱히 없어. 여기서 우리 둘이 사이 좋게 살아 가자꾸나.”
예가 말했다. 상아가 대꾸했다.
“그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지만 마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이 남자 때문이야. 난 아무 잘못이 없어. 불로불사만으로는 어림도 없지. 하늘로 돌아가 다시 신이 되어 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나에 대한 보상이 되지 않아...’
한 알씩 먹으면 부부가 불로불사를 누리며 살 수 있겠지만 누구도 승천할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이 두 알을 먹으면 승천할 수 있겠지만 남은 사람은 승천은커녕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상아는 길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서왕모의 약 두 알을 한 번에 먹어 버렸다. 여자는 이토록 무서운 존재다...
마침내 상아의 몸이 가벼워지면서 서서히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해 보았다.
‘이대로 하늘에 오르면 남편을 버리고 온 여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게 분명해. 소문이 잦아질 때까지 어딘가에서 좀 숨어 있어야겠다.’
하늘과 땅 사이에 달이 떠 있었다. 상아는 그곳에 불시착해 잠시 쉬기로 했다. 그런데 월궁(月宮)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자신의 몸이 이상해지는 기운을 느꼈다. 키가 점점 작아지고 배가 위로 밀려올라가면서 허리가 옆으로 부풀어오르는 것이었다. 위 아래가 동시에 짓눌리며 찌부러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머리가 어깨 속으로 함몰하고 입은 찢어질 듯 좌우로 늘어지며 눈이 부리부리하게 커졌다. 피부가 거무스름해지고 덤으로 커다란 테두리가 곳곳에 생겨났다.
‘꺄악!’
상아는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날카롭고 깨진 듯한 소리만 울려나왔다. 이번에는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자유롭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한 마리 추한 두꺼비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이 신화의 탄생에는 다소 흥미로운 점이 있다. 배신 당한 남자가 배신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배신녀를 두꺼비로 만들어 버리는 이야기를 지어낸 건 아닐까? 우둘투둘한 달 표면을 보고 두꺼비를 연상했음 직한데, 두꺼비가 아니었다면 그리마도 좋고 바퀴벌레라도 좋았을 것이다.
예의 아내 상아의 이름은 달의 별명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 후로 세상의 남자들은 달을 볼 때마다 상아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들은 아홉 개의 해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거나 여자에게 영약을 맡기는 바보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머릿속에 깊이 새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천 년 동안 그 이야기와 교훈을 되새기고 되새겨 왔는데도 이 세상의 남성 여러분은 그닥 현명해지지는 않은 것 같다. 예(羿)만 불쌍하게 됐다. 그는 하늘로 돌아간 건 고사하고 불로불사의 힘조차 얻지 못했다. 죽음이 그의 앞에 똬리 틀고 있었다. 게다가 그 죽음은 너무도 비극적인 것이었다.
‘예를 죽인 건 봉몽(逢蒙)’이라는 설화가 있다.
봉몽은 예의 제자이자 가신이었다. 예는 그에게 궁술을 가르쳤다. 봉몽은 차츰 궁술을 통달하기에 이르렀고 스승만 없으면 천하무적일 거라는 평판이 자자했다. 그 때문에 봉몽은 예를 살해하기로 작심했다고 한다.
봉몽은 활을 쏴 예를 죽이는 데 실패하고 결국 복숭아나무 방망이로 죽였다고 전해지는데 이 설화는 ‘기르는 개에 손 물린다’라는 의미의 속담으로 변용되었다.
사실 봉몽-예 신화는 훨씬 더 그 의미가 깊다. 모든 설화 안에서, 스승의 최대 라이벌은 제자이고 방심하는 순간 언제 무슨 일로 쫓겨날지 모른다. 제자에게 있어서도 스승은 타도해야 할 가장 큰 목표이다. 이것이 현실의 냉엄한 교훈이다.
<맹자>는 예 이야기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스승을 타도하려는 인물을 제자로 삼은 예에게도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아, 그렇군. 이쯤에서 물러날 수밖에.
예의 이야기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지 않은가. 사람 냄새가 아주 강하게 난다. 이렇게 인간을 추구하는 것이 중국의 신화인 듯하다.
서왕모에게서 받은 두 알의 영약을 앞에 두고 상아가 마음 속으로 이러저러 고뇌하는 장면은 오늘날 텔레비전 드라마의 테마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중국의 역사는 대개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서술하는 것이 보통이다. 십팔사략 역시 먼저 삼황오제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삼황 -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오제 - 소호(少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
(삼황의 경우 책에 따라 복희(伏羲), 여와(女媧), 신농(神農), 수인(燧人), 축융(祝融), 황제(黃帝) 중 셋으로 구성된다. 오제는 보통 태호(太昊=복희와 동일인물), 염제(炎帝=신농), 황제(黃帝), 소호(少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 중 다섯이다. 대체로 많이 거론되는 버전은 복희-여와-신농이 삼황, 황제-전욱-제곡-요-순이 오제로 꼽힌다. - 역자 주)
물론 삼황오제는 신화시대라고 하여 합리주의자인 사마천(司馬遷) 등은 삼황을 제쳐두고 오제부터 기술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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